전도연 배우와 송강호 배우가 열연한 영화 '밀양'을 보고나면,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에게 큰 울림을 남깁니다. 바로 '회개와 용서' 때문일텐데요. 거장 이창동 감독의 영화 기획의도는 차치하고라도, 어디까지가 회개이고 어디서부터가 용서 영역인가에 대해 한번쯤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최근 이 영화 '밀양'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요. 용서와 화해는 진정한 반성(회개)에서부터 시작되는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끊임없는 성찰(진정서 있는 사과)을 통한 용서와 화해(관계 회복)가 이루어진다고 보여집니다. 어쩌면 단순한 논리이자 진리에 가까운 이 과정이 사실은 삶의 여러과정과 역사속에서 생략되고, 무시되왔던것 같습니다.
그러면 되는걸까요? 그냥 그렇게 묻히고 말면 끝인걸까요? 시간이 치유한 덤덤함의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해서 진정한 의미의 화해와 용서가 이루어진걸까요? 심지어 이따금 그때의 그 과정을 희화화하거나 조소한다면 그게 과연 제대로 된 사회일까요? 최근 이슈가 되었던 모기업 대표의 5·18 폄하(또는 조롱) 사건도 그렇습니다. 518에 대한 직간접적인 피해자들은 아직도 그 가해당사자들로부터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은적이 없습니다. 다만, 세월이흘러 잊혀지고 덤덤해진 상태인것이죠. 여전히 우리 사회내에서는 표현의 자유란 허울로 그 고귀한 희생과 위대한 역사가 조롱 당하고 희화하되곤 합니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독일에선 나치 깃발을 함부로 들 수 없습니다. 피해자였던 당시 유대인들에 대한 조롱도 있을 수 없습니다. 엄청난 사회적 파장과 함께 법적으로 큰 처벌을 받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진심어린 반성과 진정성 있는 끊임없는 사과, 무관심하고 무지했던 세태의 반성과 지속적인 교육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엄격한 과거사로 먼저 청산이 되어야합니다. 그래야 바로 섭니다. 그래야 다시는 이 땅에 숭고한 5·18이 일개 장사치의 조소거리로 다시는 전락하지 않게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