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저널/Insane nest

쌩 유

인세인피지 2011. 2. 17.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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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는 제가 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관심갖아 주시고 격려해주신 분들께 감사의 글을 올리려는 의도로 시작한 글인데, 쓰다보니 또한 워낙에 글로 주저리대는 걸 좋아하는 성격인지라 장문의 수기가 되었습니다. 뭐 대단한 시험붙었다고 유난떠느냐고 보실 수 도 있겠으나, 저에게는 7년간의 정성이 고스란히 담긴 글 입니다. 내려보시면 알겠지만 스크롤의 압박이 상당합니다. 무관심하신분들은 읽지 않으셔도 관계없겠으나, 임용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는 작은 도움이라도 되지않을까 하여 시작합니다

 


 

 2009년 6월 30일, 치열했던 군복무를 마치고 고향인 천안으로 7년만에 돌아왔다 주위에선 취업을하거나, 혹은 타국여행으로 잠깐의 휴식을 취하는 등  다양한 변화들이 일고 있음에도, 나는 또 다시, 중등임용으로 뛰어든다.

 

마음은 조급하다. 이미 한번의 실패를 겪었고,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듯한 아쉬움이 아직도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임용에 오랜시간 낭비할 만큼 나에게는 갖은것도 그만한 여유도 없다는 생각이 더욱 나를 조급하게 했었나보다.

 

7월 부터 11월 7일 까지 미친듯이 공부했다. 외우고 또 외우고, 또 외우고, 그러나 결과는 암담했다. 4개월여의 준비는 충분했다. 그러나, 충분한 준비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인 준비는 전혀 고려하지 못했었다. 욕구가 너무 앞섰고, 나 스스로에 대한 지나친 기대감에 시험전날까지도 한숨도 자지 않고, 준비했던것이 패인이었다. 정말 바보같이 한숨도 자지 않고 나간 시험장에서는 정말이지 머리가 굳어있었다.

 

다시 1월 1일, 내 임용기의 마지막이 될 해라는 다짐으로 다시 한번 펜대를 잡는다. 남은 돈도 없고, 더 이상 시간 낭비는 없다는 생각으로, 주변에서도 평강이 너 정도의 재능과 눈치며 처세력이라면 어디서도 그 만한 월급은 받고 살 수 있다는 유혹과 권유가  끊이지 않았다. 한켠으로 나는 이렇게 힘들게 준비할 바에는 군에나 있을걸 이라는 후회까지도 했었던듯,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언제까지나 교직에 몸 담고 있을 생각은 없다. 다만, 지금 내가 꿈꾸고 있는 최선이고, 교사에 대한 소망이 너무나 간절할 뿐이기에, 마지막 2010년도 최선을 다해보련다.

 

새로운 시작은 방향성을 상실한 나에게 약간의 혼란을 가져다 주었고, 결국 고심끝에 낸 결론은 실패에 대한 철저한 원인분석, 지속적인 취약부분 보완에 치중했고, 1월 부터 6월까지는 마음을 비운채 여유있게 시간을 보냈다. 교육학 인강 수강, 전공분석, 원서 탐독으로 쏜살과 같이 6개월을 흘러보냈다. 비단, 공부에 소홀하지는 않았지만, 당장에 눈으로 보여지는 결과물이 없었기에 7월이 되자 비로소 마음이 조급해진다. 그동안 난 무엇을 해왔던 걸까,,

 

7월부터 노량진 학원가는 바빠진다. 장수생, 초시생을 포함한 전국의 수험생들이 상경하여,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기 시작하는 기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9~10월에 치뤄지는  최규훈샘의 모의 고사를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선택했다. 임용에 처음 발을 디딘2005년에도 그랬듯이, 역시나 최규훈샘이다.

 

최규훈 샘의 스타일을 약 5년 만에 접하기에 적응이 쉽지않다. 나보다도 훨씬 어려보이는 친구들, 혹은 대학원생들보다도 모의고사 성적이 좋지않다. 그러나, 일말의 걱정은 없다. 내가 틀렸던 문제들은 올해는 나오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다. 나는 누구보다도 폭넓게 공부했고, 누구보다도 깊게 공부했다.

 

1년을 준비하며, 2010년 임용시험, 정확히 말하면, 2009년 11월 7일에 치뤄진 1차 임용시험 문제지를 항상 가지고 다녔다. 마치 정신병자 처럼, 공부가 지겹고, 쳐다보기도 싫을땐 그냥 훑어봤다. 병적으로 쳐다봤다. 보고, 또 보고, 보고, 또보고, 그 문제들을 훑어보며,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시험 당일 에는 반드시 이성적인 사고로 문제에 접근하자. 2009년 제대 이후 준비했을때는 무엇이 중요한지, 왜 이런 문제가 출제 될지 라는 일종의 개념이 잡혀있지 않았다. 4학년 졸업반시절에는 머릿속에 암기된것이 없었기에 실패했다 치부했고, 2009년에는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암기에만 치중했기 때문이다. 변명아닌 변명이지만, 제대후 약 4개월 밖에는 공부할 시간도 없었기 때문에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다.(하지만, 놀랍게도 그 4개월여 탄탄히 준비하여 합격한 ROTC동기가 버젓이 있기에 변명일 수 밖에 없다ㅎ 대단한 놈 )

 

 임용을 준비하면서 다시금 느끼고, 시험을 준비하는 동문들에게 항상 해 줄 말은, 일단은 정확한 방향성을 잡는 것, 즉 합격의 길로 안내해주는 멘토(대학 교수, 학원강사 혹은 스터디 장)를 만나는 것이다. 2009년 제대 당시, 누구의 수업을 들었다는 구체적인 언급을 할 수 는 없지만, 당시에 이미 나는 2007개정 교육과정 선택교육과정의 핵심키워드 까지 다외우고 있었으니, 얼마나 출제개념이 없었는지 알 수 있다. 2010년을 준비하며 교육과정 해설서를 면밀히 재 분석함으로써 알게된 사실은,,, 내가 2009년에 암기했던 체육과 선택형 교육과정(고등학교 교육과정)은 2012년 임용시험에나 혹시나 한 문제 출제 될까 말까한 영역이었다. 그것도 굉장히 희박한 확률로 말이다. 단 적인 예 지만 이런개념을 올바로 갖게 하는 것이 멘토(대학 교수, 학원강사 혹은 스터디 장)의 역할 이다. 2009년에 내가 선택한 멘토는 분명히 실패였다. 따라서, 임용시험을 처음 준비하는 수험생이라면 이와같은 사실을 반드시 중요시 해야 함을 강조한다. 그럼, 내 멘토는 누구였는지를 밝히는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남들은 28세에 합격을 했으니 빨리 된것이 아니냐고 묻지만, 내가 노력했던 전력을 알게 된다면, 난 결코 빨리 된것이 아니다. 총 3번의 시험을 봤고, 당당히ㅎ 삼수 만에 합격했으니, 충분히 될때가 되서 된것이다. 앞서 언급한 멘토를 4학년 현역때 만났더라면, 그때도 충분히 합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대다수의 학생들이 충분한 정보도 없이, 무작정 시험에 뛰어들고, 노량진 학원가의 수강료를 기준으로 혹은 아무 근거없는 선배들의 전언에 따라 멘토를 선택한다는것이다. 거의 모든 노량진 학원선생님들의 강의를 들어봤지만, 진정으로 추천해주고 싶은 강사는 둘 뿐이다. (그것도 한 분은 위태위태하다) 어찌됐든, 나는 삼수만에 체육전공과 관련된 일련의 개념을 거듭된 실수와 원인분석, 보완을 통해 스스로 터득했고, 일정 수준에 이르렀을때 내가 갖고 있는 개념이 틀리지 않구나 라는 사실을 학원선생님들의 모의고사나 강의을 통해 확인한 케이스이다.

 

 

 각설하고, 2011 중등 임용 1차 시험이 있던 날, 강원 춘천에서 시험을 봤던 나는, 이성적으로 이성적으로 접근하자는 생각을 시험 당일 아침까지 했지만, 역시나 이성을 잃고, 어이없는 판단과 선택을 남발(컴퓨터용 사인펜이 내 이성을 이기고, 지 멋대로 마킹하는 사례 발생)하고, 시험을 마쳤으니, 집에 돌아 와서 채점할때는 심장이 멎는줄 알았다. 이성을 이겨버린 나의 잘못된 욕망의 힘은 참으로 대단했으니, 총 40문항중 1~5항목의 갯수가 똑같을 것이라는 미친생각을 왜 갑자기 거기, 그 시험장에 했는지 모르겠다. 시험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또 다른 중요한 것은 평가원에서 실시하는 모든 시험이 1~5번 항까지 똑같이 8개씩 있는게 절때~~~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갯수가 비슷한 정도지, 나와 같은 미친생각 절대하지 마시길ㅎㅎ 암튼 나는 깔끔하게 8개씩 어거지로 끼워맞춰서 제출했음 ㅎㄷㄷ 1차 점수는 지역가산점이 없었더라면 떨어지는 점수 정도 였다고들 알면 되겠다.(난감하니, 물어보지들좀 마삼) 내가 그렇게 좋아하던, 체육사/철학에서 미친 갯수 맞추기를 해서 4개나 틀렸다. 지금도 기억나는 호이징와 문제, 헤더링턴 문제, 중세기사 문제 등등 ㅠ 정말 중요한것은 이성적으로 생각하는것이다. 내가 여기서 한 문제 더 맞춰서 남들보다 앞서겠다는 모험은 절대 금물이다.(정말 중요하다)

 

  2009년에 일반교육학을 소홀히 했었다. 시간이 부족했다. 2010년엔 원없이 일반교육학공부를 했다. 그래서 자신도 있었다. 모의고사는 항상 17점 이상을 맞았고, 촉만 좋으면 다 맞을 기세등등했었다. 하지만 시험당일, 미친 이성은 유감없이 발휘됐다. 그러고 보니, 미친 이성을 1교시 일반교육학 때 부터 보였던듯,, 일반교육학은 정말 쉽게 출제 됐다. (기출보면 알겠지만,,) 다 맞아도 사이코라는 소리 안들을 정도로 평이했던 2011시험이었던듯, 그러나, 비이성적인 생각에 사로 잡혀 많은 문제를 틀렸었다. 결과적으로 16.5점 맞았다. 그래도 16점 이상은 맞았기에 1차를 통과할 수 있었다고 본다. 체육임용준비할 때는 일반교육학과 전공의 비율을 3:7로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지만,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비율은 5:5로 하는것이 좋겠다. 일반교육학에 자신이 붙으면, 오히려 전공공부가 너무 재밋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반교육학 그 자체도 일정수준이상이 되면 미치도록 재밋어진다. 시험당일에 맞춰 생각해 보자. 1교시 일반교육학이 술술풀려야 2교시 전공체육도 술술 풀 수 있는법, 1교시 일반교육학 아리까리한데, 2교시 전공체육 술술 푸는 사람은 좀 아웃사이더라는 느낌이 드는건 나뿐일까? ㅎ

 

 한달동안 2차 논술을 준비할 시간이 있다. 당초 목표는 03학번 동기였던 성진이의 조언대로 김용호 임용기숙학원에 입원하여, 거기서 스터디를 꾸리고, 그 스터디 그대로 3차 까지 가는 계획이었으나, 전의 전쟁을 방불케하시는 김용호선생님의 계산에는 수지가 맞지 않았는지, 올해는 기숙학원을 오픈하지 않겠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 그래서 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나 어짜피 글쓰는거 좋아하고, 누가 지적하면 더 쓰기 싫으니깐 미친듯이 혼자서 써봐야겠다고 결심했다. 결국 독학했다. 성진이는 하루에 10개의 주제를 썼다고 하는데, 나는 잘 써질때는 15개, 쓰기 싫을때는 하루종일 테니쓰만 쳤던 기억,, 시험용지와 비슷한 싸이즈의 B4용지 양식을 구해서 300장을 통 크게 복사했다. 300장 말이 300장이지 그 양이 어마어마 하고, 주제 300개를 책에서 발췌하는 것도 쉽지않다. 우선은 최규훈쌤이 1차 모의고사를 진행하시면서 논술출제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하셨던 것들을 모아봤다. 약 60개 정도의 테마가 모였다. 매 회 마다 과목구별없이 언급하셨기때문에, 오히려 한쪽 과목에만 치중하지 않았고, 전과목을 다룰수 있었기에, 첫번째 우선적으로 최쌤의 모의고사를 토대로 한것은 좋은 판단이었던듯하다. 다음으론, 김형규 쌤의 교재에 표시해놨던, 출제가능 테마들을 정리했다. 약 40여개 정도가 발췌됐다. (수많은 수험서를 봤지만, 2010년에는 김형규 쌤의 교재를 봤다. 물론, 주요과목은 원서를 봤기에 김형규쌤 교재에 100%의지 했던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론, 내 마음가는대로 1년 동안 시험 준비하면서 나올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원서에 표시해놨던 부분들을 정리하니 50여개가 발췌되었다. 약 150개의 테마가 정리되고 나니,

 여태 출제되었던 교과교육학(2007개정교육과정을 포함한 교육과정시리즈물들: " 조미혜(체육계의 김태희 ㅎ)교수님의 7차교육과정의 모체가 되었던 체육교육과정과 평가, 2007개정교육과정의 모체가 되었던 유정애 선생님(체육계의 전지현ㅎ)의 체육수업비평, 절때 빼놓을 수 없는 체육교육과정총론" , 쥬디스 링크의 수업방식, 모스턴 수업스타일, 메츨러 수업모형, 최의창교수님의 체육교육탐구, 주옥같은 '인문적체육교육과 하나로 수업- pg가 추구하고픈 체육수업을 선도하시는 분!")과 교과내용학(스포츠 심리, 운동심리, 운동학습과 제어, 운동역학, 운동생리학)에서는 더 이상 뽑을 것이없었다. 기타, "체육사철학에서 출제가 된다. 스포츠 사회학에서 출제가 된다. 체육측정평가에서 출제가 된다는 소문은 무성했지만, 학벌이 딸리는 나로써는 확인할 길이 없었으니,,, 어디서 어떻게 봐야할지 엄두가 나지 않아, 그 부분까진 보지 못했다." 고로 한달동안 약 150개의 테마, 쓰다가 버린 종이 까지 합쳐서 300여장을 고스란히 소비하고, 시험장에 들어서니, 어느정도의 자신감은 갖고 시험에 임했다.

그러나, 이게 웬걸, 막상 시험당일에는 2007개정교육과정의 단점을 비판하라는 등, 스포츠 사회학과 체육통계^^;;가 나온것이 아닌가! 당초 예상보다 너무 다른 영역에서 나와 적잖이 당황하긴 했지만, 나름 준비한것처럼 8장을 거의 채워서 제출했다.

 시험장을 나오니 내가 뭘썼는지, 어떻게 썼는지는 잘 기억나진 않았지만, 최규훈쌤이 말하셨던, 그 무아지경 상태 비슷하게 경험하긴 했던것 같다. 젤 어려웠던 문제는 2007개정 체육과교육과정의 단점을 쓰라는 문제였던듯, 그도 그럴것이 나는 지난 1년동안 2007개정교육과정을 신봉하다싶이 훑어 봤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이런 의구심이 들었다. "왜 이런 문제가 출제되었을까? 교육과정 바뀐지 얼마나 됐다고 비판을 하라는 건가,, 전지현과 김태희가 알력 다툼을 하나?" 어디까지나 내 추측이긴 하지만, 7차교육과정을 조미혜교수님(체육교육과정과 평가) 주도로 만들었다. 그런데 2007개정 교육과정이 나오는 당위성을 만들기 위해 유정애 교수님이 7차교육과정을 지속적으로 아주 신랄하게 비판하셨었으니(체육교육과정총론, 체육수업비평을 봐라 좡난아님), 어느정도는 김태희가 전지현에게 악감정을 갖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차 시험때는 김태희와 전지현이 모두 출제위원으로 들어갔다는 소문이 있었다. 실제로 교육과정에서만 5문제가 출제되는 전례없는 사건이 발생했지않았는가, 2차때는 김태희만 들어갔다는 가정하에 전지현이 만든 2007개정 교육과정을 비판하는 시도를 했던것 같다. (이쯤되면 추리소설 써도 될듯, 어쨌든 이것은 전공체육을 워낙 열심히 공부하다 보니, 말도 안되는 픽션을 쓸정도의 수준이 됐다는 반증이니, 동문님들은 귀감삼으시오 ㅋㅋ)

 

최종 합격 발표와 동시에 2차 점수 도 확인을 했다. 입이 떡 벌어졌다. 내 예상보다 너무 낮은 점수를 맞은것, 실로 나, 떨어질뻔 했구나라는 생각에 손이 ㄷㄷㄷ 했었다. ㅎㅎ 일부지역은 능력자들의 해킹에 의해 2차 점수가 공개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었다. 차라리 나는 내 점수 모르고 3차 마음편하게 준비할 수 있었던 것도 복이었던것이다.(당시에는 내 점수가 무지 잘 나올줄 알고, 능력자들이여 내 점수를 알려주세요라고, 대문에 써놓기도 했었는데, 깝쳤던거다ㅎㅎ)

 

비로소 3차 준비, 드디에 꿈에 그리던 메이져리그라고 표현해도 좋은 나의 무대. 2차 시험이 끝나고, 무작정 상경했다. 동기 성진이가 추천하는 한양임용실기학원에 등록했다. 강원도 준비하는 분들이 나를 포함5명이나 있었다. 그래서, 실기 준비하는 시간이 즐겁지가 않고 경쟁의식이 살짝살짝 생겨서 싫었다. 마침 02학번 형이자, 147 ROTC 선배인 재엽이 형이 학원으로 합류하여 반을 옮기게 되고, 타지역(서울지역위주) 분들과 같이 즐겁게 운동하는 분위기를 형성, 그분들 위주로 수업지도안, 수업실연, 심층면접 스터디를 구성했다. 총 12명이 첫날 모였고, 4명씩 3개 스터디 그룹을 결성했다. 물론 12명은 같이 운동하는 한 반이었다.

 

1, 2차 준비와는 다르게 3차 준비는 어느정도 여유가 있었고, 좋아하는 운동을 한다는것 자체로 감사감사였다. 간만에 스터디원들과 술터디도 하고, 보라매 공원에서 임용을 벗어나 테니스도 치고 인간다운 수험생으로 변모하는 듯 했으나, 어느덧 2차 발표가 나고(3차 실기 2주전) 본격적으로 빡시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재엽형과 나는 강릉행이라는 초강수를 두게 된다.

 

 (단, 학원비를 냈는데, 학원안다니고 강릉으로 간것이 아니고, 2차 발표이후에 학원을 재등록하는 기간이 있다 - 그때 강릉행 결정을 하게된것)

 

 말이 제 2의 고향이지, 강릉떠난지 언 3년이 지났으니, 재엽형은 물론이고, 나조차도 후배들도 가물가물, 어디에 어떻게 도움을 요청해야하는지,,

 

 일단, 2차 발표다음날 무작정 차를 끌고 학원에 인사를 하고 재엽형과 강릉으로 출발, 강릉도착 직전 학회장 범철의 도움으로 후배 자취방을 섭외 하여 머물 거처가 마련되었다. 당장 다음날의 대략적 계획을 세웠고, 마침 학교에 계시는 윤상호 교수님과 면담을 통해 학교시설과 관련된 많은 부분을 지원받게되었다.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시고 지도해주신 교수님 은혜를 잊지 못한다.

 

 강릉에서의 자세한 훈련내용을 밝힐 수 없지만, 재엽형과 나는 피나는 지옥훈련을 했고, 강원 춘천에서 실시한 3차 실기시험에서는재엽형과 내가  9명중, 1~2위를 했던것 같다. (다른 합격자와 실기점수를 비교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건 내생각 ㅋㅋ)

 

이제 일주일의 시간이 남았다. 수업지도안 작성과 수업시연, 심층면접이 이틀에 걸쳐 치뤄진다. 솔직히 운동중독과 음주가무에 빠져 남은 시험은 준비가 부족했던것이 사실, 그 일주일중 천안으로 복귀하고, 하루 쉬고, 주말 보내고, 다시 춘천으로 이동할 시간을 고려하니, 실제공부할 시간은 4일 뿐, 그 4일간 많은 생각을 했다. 면접책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지도안은 4번도 작성해 보지 않은상태, 다시 무작정, 옛 스터디원들을 찾아갔다. 서울에서 꾸준히 준비했던 스터디 원들의 수준은 몰라보게 향상되어있었다. 하룻동안 그들의 몰라보게 향상된 수준에 탄복하고 돌아온 나는 불타오르는 열의를 가지고 면접과 지도안을 작성을 하려고 했으나 귀찮고 막막해서, 거의 안했다.ㅎ

 

마지막 시험전날, 강원 춘천에서 재회한 재엽형과 나는 특별한 공부를 더 한다는 것보단, 마인드 컨트롤에 치중했고, 막상 우리에게 주어진 시험문제는 그동안 준비했던 양식과 매우 달랐으니, 결과적으로 준비안해도 큰 변별은 없었던 것같다. (수업지도안 작성과 수업실연은

평강's [ n e s t ]에 게시해 놨으니 궁금한 분들은 참조하기 바람)

결국 가장 준비가 소홀했던 심층면접 전날밤, 불안한 마음으로 그제서야 꾸역꾸역 책을 보던 내게, 재엽형이 던진 말한마디로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어짜피 범교과 통합주제라서 임기응변에 달렸고, ROTC출신인 우리가 쫄 필요 전혀 없다"는 재엽형의 조언은 이번 임용시험의 백미,ㅎ

 

 최종합격후 시험성적이 공개된다. 1차점수는 거의 모든 지역이 해킹이 되어 알고 있었다. 2차점수는 앞서 언급한것처럼 나를 깜놀하게 했고, 3차 점수는 잘한건지 못한건지 비교 준거가 없어서, 모르겠지만, 어쨌든 2차 점수가 낮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합격한 것 보면 3차를 잘본것 같다. 수업지도안과 수업실연은 변별력이 없는것이 확실하고, 30점 배점의 실기와 40점 배점의 심층면접은 최대 10점까지 편차가 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부분은 연수원들어가서 같이 합격하신 타학교 출신 형님들께 여쭤보면 알 수 있을듯,

 

 최종발표가 나기 전전날 교회 수련회를 갔다. 불안한 마음으로 집에서 전전긍긍하기 보단, 기도로 준비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는 최종합격, 그간 연락을 못하고 지냈던 지인들과의 기쁜 재회, 이어지는 축하, 따라서

 

합격은 하고 볼 일이다. 급마무리ㅎ

 

2011. 1. 29

pg


 

아, 위에 첨부된 파일은

임용을 준비하는 당신이라면, 반드시 암기해야할 내용들을 제가 손수 정성껏, 완전 심혈을 기울여 정리한 문서입니다. 당신의

머리속에 살포시 넣고 가시라고, 친절하게 첨부해 드리는 나는 대인배 

청킹의 향연! 고고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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