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저널

위플래시 후기 그리고 결말

인세인피지 2015. 3. 15.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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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영화를 봤습니다. 옥계로 이사하고 난 뒤로 좋아하는 영화도 강릉나와서 볼라치면, 왠지 피곤할 것 같아. 차일피일 미루던중, 원주 테니스 대회를 기회삼아 집사람과 여주 아울렛 구경 후 원주cgv를 찾습니다. 매번 느끼지만 원주 cgv는 참 초라한 영화관 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어느덧, cgv RVIP가 되어있네요. 평일무료관람 쿠폰과 주말 무료관람 쿠폰은 잔뜩 발급한 뒤 예매하는 느낌이란, 참 따뜻합니다. 이미테이션 게임과 위플래시를 고민하던 중 단지 영화시간만을 고려하여, 결정하였습니다.

사전 정보가 전무한 상태에서 영화 감상은 참으로 오랫만이 었고, 영화시작에 늦지 않게 일찌감찌 도착하여 느긋하게 지겨운 광고를 보는 것도 참으로 오랫만이었습니다. 그중 라인레인져스 광고는 최악이었습니다. 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네이년에서 '플래시 오브 클랜' 같은 고퀄리티 깨알 광고를 만들 순 없을까요 아이러니 합니다.

영화시작과 함께 드럼 비트가,, 긴장감을 고조 시킵니다. 집사람이 옆에서 이거 드럼 관련된 영화야 라는 팁을 줍니다. 그 다음부터 몰입이 시작되더군요. 영화는 시종 일관 몰입을 유지하는데 기가막힌 타이밍을 보여줍니다. 감독 스스로의 경험을 토대로 영화를 제작했다고 하네요. 영화가 끝난뒤의 만족감은 비단, 풍성한 브라스로 인한 재즈곡들의 향연 때문 만은 아니었던것 같습니다. 도대체 감독은 왜 사이먼을 또라이로 묘사했을까, 끄끝네 왜 명성과 직위를 유지하려는 아집투성이의 인간으로 만들 수 밖에 없었을까 라는 의문에, 위플래시를 검색했습니다. 물론, OST를 듣고 싶어서 였기도 했지요.

저보다 먼저 영화를 감상한 네티즌 께서, 위플래시의 결말을 명확히 하고 싶으셨나 봅니다. 아래 글은 위플래시에 대한 surin01님의 답변이 감독의 의도와 부합한다고 판단하여, 전문 그대로를 옮깁니다. 아래글은 네이버 유저 surin01님의 위플래시 결말에 대한 의견입니다.





사람들은 플래처 교수의 가학적 교육방식이 앤드류의 천재성을 끌어내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었다고 하는데, 제가 보기엔 아닙니다.

 

말 그대로 '역관광'인 것입니다. 교수는 자신을 제적당하게 만든 앤드류에 앙심을 품고 실제 레퍼토리와는 다른 엉뚱한 악보(카라반, 위플래시)를 던져주며 일주일 연습을 해오라 합니다. 제가 음악을 전공했고 드러머 출신이라 정확히 느낌을 짐작할 수 있는데, 그 마지막 무대에서 악보 없이 템포조차 모르는 스윙 곡을 연주하라고 하는 건 아무리 천재 드러머라 한들 지휘자의 포스쳐만 보고 해낼 도리는 없습니다. 일종의 '사형 선고'인 격이죠. 앤드류의 담력이나 즉흥연주실력을 테스트하려거나 하는 게 절대 아닌 것입니다..

 

즉, 드럼 솔로를 혼자 앤드류가 갑자기 쳐대기 시작할 때 교수가 협박조로 "What are you doing?"한 것, 그 면전 앞에서 심벌을 엑센트로 때리며 "엿먹이기"를 시도한 앤드류의 반격으로 해석되는 것이죠.

 

마지막에 카라반을 듣고 나서 지휘에 손놓고 있던(엄밀히 말하면 연주자들로부터 '왕따'가 되었던) 교수가 비로소 호응하기 시작한 건, "오로지 실력으로 말해야만 정당성이 입증될 수 있던" 그 무대에서 모두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미친 실력으로 어필한 앤드류의 "실력의 권력화" 앞에 교수가 무릎꿇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무늬는 "지휘자와 연주자", "선생과 제자"이지만 사실 그 이면을 들여다 보면 실력의 권력화가 이루어진 그 스테이지에서의 "보여주기식 전략적 협력(제휴)"이 되어 버린 것이죠. (엄청나도록 눈부신 연주 앞에서 그것을 보고도 모른 체하고 있는 지휘자는 역으로 그 실력과 자질을 의심받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앤드류가 교수의 그 반응을 듣고 한번 흘려보낸 웃음은, 존중의 의미가 아닌 "냉소"입니다. 감독은 반전에 반전을 잇는 두 개의 큰 장치를 결말에 만들고 싶어하였고, 그러려면 "냉혈한 스파르타지만 예술가적 혼이 깃든 교수"의 이미지를 관람객에게 심어주기 위해 복선을 깔아두어야 했죠. 바로 그 장치는 "케이시"라는, 우울증으로 한달 전에 자살했다는 또 한 명의 제자 트럼페터입니다. 플래처 교수는 그 제자의 죽음을 분명히 "오늘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거짓말하면서 제자의 죽음을 애도하고 슬퍼하는 모습을 보였죠. 결국 그것은 제자를 아끼는 눈물이 아닌, 제자의 죽음으로부터 자신이 면책받을 것을 두려워한 선생의 방어기제가 보여준 거짓 눈물이었음을 드러낸 셈입니다. ("케이시"라는 제자가 언급된 것은 바로 이 복선을 보여주기 위한 데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플래처 교수의 캐릭터는 자신의 명성과 자리를 지키기 위해 제자를 사지로 내몰고 보복하는 것을 서슴지 않는 냉혈한 괴물적인 악마로 매듭지어지게 됩니다.

 

저는 제 해석에 확신을 갖고 있지만, 감독은 열린 결말을 통해 사람들이 바라보는 다른 시각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그것을 인정합니다. 이런 것이 예술작품을 바라보는 중의적인 묘미이기도 하니까요.





아무튼, JK 시몬스의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수상은 두말할 나위없는 결과이며, 동 시상식 3개부문 수상, 다수 노미네이트라는 업적만 놓고 보더라도 작품성과 흥행의 두마리 토끼를 다 잡은 영화라는 사실은 부인 할 수 없겠다.

마지막으로 surin01님의 답변 글 중 '실력의 권력화', '보여주기식 전략적 협력(제휴)' 라는 표현은 참 맘에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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