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저널/삶의 단상

말하는대로

인세인피지 2011. 7. 2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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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대로

 

연수를 다녀왔다. 신규교사 임용전 직무연수를 제외하고는 첫 연수 였다. ‘좋은우리담임연수이제 곧 담임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기에 기왕이면, 보다 준비된 상태에서 담임역할을 수행하고 싶은 마음에서 였다. 선배교사가 추천한대로, 연수는 상당히 활동적이었고, 흥미로운 주제로 구성되었다. 지루할 틈도 없이 계획된 16시간, 12일의 일정이 끝나고 이번 연수가 나에게 준 의미를 되새겨 보는 시간을 갖고자, 이 글을 적어본다.

 

연수의 구성은 다음과 같았다. 다양한 지역, 다양한 학교급에서 생활하다 모인 연수생들은 서로 서먹하고, 낯설기 마련이다. 이러한 어색함을 타개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몸으로 활동하는 것. 연수 주최측은 이것을 아주 절묘하게 조합시켰는데, 바로 왕따 극복 프로젝트인 ‘ABC’프로그램을 실시하였다. 좋은우리담임연수의 꽃이라고도 할 수 있는 ABC프로그램은 다양한 게임과 사례를 통해, 연수생들의 어색함을 극복 할 뿐만아니라, 게임이 내포하고 있는 소외된 아이들의 감정을 역지사지로 경험하고, 나도 가해자가 되어봄으로서 스스로 그러한 행동들이 바르지 못함을 일깨워주는 프로그램이다. 물론, 취지도 좋지만, 게임자체가 굉장한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특히, 활동적이고 움직이기 좋아하는 나에게는 매우 적합한 프로그램이었다. 담임이 되면, 가끔씩 체육관에 아이들을 모아놓고, 그러한 게임을 하나씩 해본다면 아이들도 좋아하고, 나 자신도 아이들의 순수성에 동화되어, 사제지간이 갖는 다소 딱딱한 경계를 보다 엷게 만들 수 있을것만 같은 자신감이 들었다.

이후 이어진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강의식 수업이었지만, 그 주제 자체를 최대한 현장에서 가져와 흥미로운 강의들이 이어졌다. 물론, 앞에서 강의하시는 강사분들의 화려한 입담 덕이기도 하겠지만, 시종일관 웃고, 대답하고, 즐기는 편한 분위기의 연수가 맘에 들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강의는 마지막 순서였던 교사의 길이라는 주제의 수업. 의정부에서 십대 학생들을 돌보는 기관목회를 하시는 박현동 목사님의 강의였다. 처음에는 단지 봉사단체의 소장님으로 생각했었는데 강의를 들으면 들을수록 목회자 같다는 생각도 잠시, 스스로 기관목회를 하는 목사의 신분이라고 밝히셨다. 어쩐지, 강의의 템포조절이나, 청중의 심리를 들었다 놨다하시는게 보통 분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었다. 역시나 텔레비전 다큐에도 가출한 십대청소년들을 돌보는 부모같은 목사님으로 수차례 소개되셨던 분이고, 직접 연구한 사례나 다양한 상담이론들도 집필하시는 실천과 이론이 하나됨을 몸소 보이시는 분이었다. 강의 내용중, 뇌리에 강한 감흥을 불러일으켰던 부분을 짧게나마 상기해 본다.

 

인간 삶의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타자를 꼽아본다면, 가장 먼저 부모, 다음으로 친구, 배우자, 그리고 가정을 이뤘을 때 갖게되는 자녀라고 볼 수 있다. 가출한 십대아이들에게 가정환경을 물으면 백이면 백, 거의다 결손가정이거나, 부모의 학대, 폭력 등이 포함됨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보통의 학생들이 자연스레 갖고 있는 부모로부터의 정서가 결핍된 상태이다. 따라서, 그들은 부모로부터의 사랑이 결핍된 채 학교 친구들로부터 그러한 결핍된 정서를 맹목적으로 얻으려 한다. 주목할 점은 일반적인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친구를 사귈 때 어느정도 분별하여 만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결손가정의 아이들은 맹목적으로 친구에 집착하기 때문에 친구를 분별하여 사귀는 능력이 제로에 가깝다. 문제는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맹목적으로 친구를 만나는 결손가정의 아이들은 친구들의 행동이 옳고, 그름을 떠나 무분별한 행동을 서슴없이 하게되고, 이러한 과정이 지속되다 보면, 어느덧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이라고,

 

그래 그렇다 치자. 그럼, 담임교사는 무엇을 해야할까. 일목요연하게도 박현동 목사님은 정답이라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담임교사는 각 학생들의 수준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정서를 상기시켜 주어야 한다고 말이다. 결손가정의 아이들에게는 부모의 정서를 (, 아가페적 사랑이다.) 갖게하고, 부모의 정서가 충족된 대부분의 아이들에게는 친구의 정서를 갖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도 순서가 있는 것이 부모의 정서가 없는 아이에게 친구의 정서로 다가가면, 이 아이는 부모의 정서가 결핍된 상태이기 때문에 결코 정상생활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친구의 정서는 어떠한 의미일까? 여기서 알아야 할 개념이 등장한다. 바로 의미적 존재이다. 이것은 비단 친구 정서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 담임교사는 학생들에게 의미적 존재가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의미적 존재란 담임교사인 내가 학생 A에게 얼마나 의미가 있느냐를 말하는 것이다. 학생 A에게 가장 의미있는 존재가 담임인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면, 담임교사의 말이라 한들 과연 그 말이 학생 A에게 의미있는 메시지가 될것인가를 묻는 것이다. 그 내용이 아무리 가치있고,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것이라도, 듣는이에게 아무런 관심을 끌어 낼 수 없다면, 그것은 잔소리, 아니 개소리가 될 뿐이다. ‘친구의 개념을 이렇게 명쾌하게 짚어내는 것도 처음이다. ‘곁에두고 오래사귄 벗이라고 어느 감독이 그랬던가, 박현동 목사님의 설명은 조금 다르다. ‘친구란 아무것도 아닌 소소한 얘기를 재밋게 나눌수 있는 사이를 친구라고 정의한다. 그렇다. 담임교사와 학생사이에 생겨야할 래포는 바로 이런 개념인 것이다. 물론 가볍게 농담이나 따먹고 할 수는 없지만, 담임교사인 나도, 학생들도 격의없이 얘기하고, 즐기고, 놀고, 활동하는 그런 분위기, 서로에게 그런 의미적 존재로서 작용할 때에만 비로소 친구 정서가 완성되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서로에게 의미적 존재가 될 수 있을까? 물론, 강의 내용엔 앞 질문에 대한 답이 언급되었지만, 그것은 교육학적인 아주 모범적인 답이었고, 이 질문에 대한 진정한 답을 찾기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하는 자세를 갖는다면 언젠가 모범 답에 가까운 담임교사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 않을까 기대된다. 문득 연수 첫 번째 시간에 사회를 보셨던 선생님의 멘트가 기억난다.

 

여기 이 자리, 그것도 방학한지 하루만에 담임을 좀 더 잘해보겠다고, 이 자리까지 찾아주신 여러분의 열정 그 자체만으로도 벌써 여러분은 좋은담임으로서의 자격을 갖춘 것입니다

 

과연 정답이 있을리 만무하지만, 진정한 교사의 길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지금의 자세를 잊지않는다면, 어는 순간 나도 좋은 교사, 좋은 담임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2011. 7. 21

가치체계를 확립하라, 목표를 기록하라, 우선순위를 상기하며 생활하라

미치지않고 인생을 논하는가, 인세인 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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