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를 제대로 시작한건 2014년 11월, 왜 이 시기를 정확히 기억하냐면, 이 시기가 결혼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결혼을 준비할 무렵 본격적으로 테니스를 치기 시작했다. 당시만해도 테니스와 축구를 병행했었고, 테니스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축구로 풀곤했었다.
2014년 11월 이후, 약 4년간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당시의 내 포핸드는 어려서 아버지께 잠깐 배운 이스턴 계열의 포핸드, 근데 이 포핸드가 잘못된게 탁구 드라이브 처럼 그져 공을 아래에서 위로 쓸어올리는 힘없는 탑스핀성 공이어서, 맥없는 스트록만 구사할 수 있었다. 그마져도 시합에 나가면 긴장해서 내 볼은 한 없이 짧기만 했다. 그래서 내 선택은? 그립을 아예 바꿔버렸다. 이스턴에서 무려 웨스턴으로, 막간의 테니스 상식을 좀 풀어놓자면, 이스턴은 미국 동부지역에서 유행하는 스트록 스타일, 웨스턴은 미국 서부의 스타일로 알려져있다. 어쨌든, 난 웨스턴 계열의 포핸드와 오픈스탠스로 기존보다는 조금 더 파워풀한 스트록을 구사할 수 있었고, 테니스 입문 4년만에 2018년 꼴랑 포핸드 스트록 하나로 도단위 대회 신인부(횡성아침이슬배)에서 첫 우승을, 챌린져부(원더풀삼척배)에서 준우승(같은 클럽 형들을 만나서, 결승을 포기했다)을, 당시 지역내 최고수 친구가 파트너를 해주어서 마스터부에서 우승(강릉 솔향배)을 거머쥐었다. 모든 입상을 바이스로서 듀스코트에 섰었는데 당시 내 포핸드는 나름 잘 먹혀들어서 내 특기는 파워풀 다운더라인 이었다.
그리고 2018년 가을, 문제의 사건이 발생한다. 이제는 제법 테니스인으로서의 몰입이 뚜렷해진 시기였는데, 당시 소속축구팀 친구가 팀의 감독을 맡고 있었는데, (당시 대학원 준비를 하느냐, 한해동안 오로지 테니스에 몰입하고 있었음) 친구가 연말 리그 경기에 중요한 승부처란 이유로 꼭 경기를 뛰어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한 해 동안 거의 축구팀 경기를 뛰지 못한 상태라, 나는 흔쾌히 경기에 참여했고, 그 경기에서 전방십자인대, 내외측 반월상 연골 모두가 파열되는 중상을 당했다. 그리고 나는 강릉 생활을 마치고, 원주로 오게된다.
이후 1년여 동안 테니스를 거의 치지 못했다. 생각보다 무릎 부상의 후유증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고, 수술 후 2018년 겨울 재활치료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내가 자랑하던 오픈스탠스 헤비탑스핀 파워포핸드는 더 이상 구사하지 못했다.
원주로 이사온 뒤 무릎이 차츰 호전되자, 더이상 파워풀 포핸드는 구사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단식테니스와 원주 명문 테니스러브에 가입하고 단체전에서 나름 쏠쏠한 활약을 이어갔다. 그리고 2021년에는 지인 몇명이 모여 굿모닝테니스 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강릉시절을 마치고, 원주시절의 첫 입상은 2021년 제1회 토마토배 테니스대회 였다. 횡성 둔내에서 열리는 토마토배 테니스대회는 둔내 토마토축제 때 그 일환으로 열린 대회였는데 특이한 점은 출전자 16명인가 32명으로 제한하고, 1세트 경기가 아닌 당시나 지금이나 생소한 3세트 경기를 했다는것. 당시 굿모닝테니스 모임을 만들었던 친구와 출전하였는데 결승에서 같은 굿모닝 후배들을 만나 천신만고 끝에 우승을 차지했다. 이때 경기영상이 유튜브에 떠도는지, 이 이후에 이따금 이 영상을 봤다면서 내가 비랭킹 전국대회 우승자가 아니냐고 물어보는 사례가 있었다. 하지만, 출전팀 규모, 대회방식의 차이에 의해 이런 대회는 이벤트 대회로 분류하지, 비랭킹 대회로 여기지는 않는다.

그 이후 한동안 입상이 없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2024년에 큰 수확을 거둔다.
오랜만에 다시 도대회에서 입상을 하게된것. 2018년에 도대회 입상을 했으니, 무려 6년만이다. 재밋는 것은 우리 강원도는 테니스인들에 개인별 등급을 매기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어느순간 0.5점을 내려주는것 아니겠는가. 당시 3.5점이었던 나는 상급대회 출전에서는 경쟁력이 없어 도대회에 나서지 않고 있었는데 점수가 하향됨에따라 같은 클럽 후배와 2024년 4월 영월 동강배 신인부를 나가 우승하게됐던것.
또한 그렇게 지독하게 단식테니스에 매진한 결과 2024년 8월, 충주 단식대회 4그룹에서 드디어 우승을 차지한다. 웃픈 얘기지만 내가 잘쳐서 우승한게 아니고, 날이 워낙 더워서 8강부터 상대들이 제풀에 그냥 지쳐 떨어져나갔다. 나는 그져 서있었을뿐인데 상대들이 쥐나고, 탈진하고, 그러더라. (참고로 나는 추위에는 엄청 약한데 더위는 그닥 타지않는다.)

이제는 도대회에서 이룰 수 있는 대부분의 성취는 이루었다. 물론 내가 에이스로서 다시 신인부, 챌린져, 마스터부를 우승해봤냐고 물으면 그건 또 다른 영역인지라 쉬이 답하지 못하겠으나, 어쨌든 이 정도되면 이제는 전국 대회 입상을 목표로 삼는 수순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전국대회에 출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2021년 부터 꾸준히 전국대회에 출전했으나 항상 본선 1(128강)~2(64강)라운드 선에서 무너졌다. 그리고 2024년 즈음에는 본선 32강~16강 선에서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전국대회 입상이 목전에 있는데 왜 입상하지 못할까라는 고민을 이 당시부터했던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 원인을 무릎 부상 후유증으로 더이상 파워풀한 포핸드를 구사하지 못하는것과 고질적인 어깨부상을 야기하는 서브 매커니즘의 문제로 꼽았다. 오픈스탠스 포핸드를 구사할 때 축이되는 오른 무릎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오픈 스탠스의 헤비탑스핀을 더이상 칠 수 없다면 구질 자체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존에는 헤비 탑스핀이었다면, 이제는 플랫드라이브로의 변모를 연구했다. 마침 같은 클럽 내에 내가 롤 모델로 삼고 있는 형님의 스트록 스타일이 참 다채롭고 아주 파워풀해 그 형님의 스트록을 참고했다. 운좋게도 2025년에 들어오면서 내 스트록은 점차 헤비탑스핀에서 플랫드라이브성으로 변모했다. 반면, 나의 테니스 서브는 점차 오리무중. 어깨 부상을 피하기 위해 어떤 매커니즘을 구사해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정말 오랜시간 해왔다. 이 블로그 글을 찾아보면 '테니스서브'에 대한 나의 그간의 고충을 찾아볼 수 있으리라.
그렇게 잡힐듯 말듯한 나의 서브 테크닉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아직도 폴트를 밥먹듯 한다. 그러나 오늘은 조금 달랐다. 물론 분명 운이 따랐던 부분도 있지만, 분명 몇가지 짚어놓고, 기록해놔야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다.

2부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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