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략하게 기록정도만 남기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내 테니스 경력 11년을 총망라한 서사시가 되어버렸다. 엄청난 유니버스의 3부작을 쓰게 될 줄이야
암튼 그런 서사를 통해 우리는 예선 경기장으로 배정된 오창 테니스장에 도착,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6면의 인조잔디 테니스장을 압도하는 엄청난 크기의 게이트볼장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허허
이곳에서 8강까지 경기하게 되고, 이중에 4팀만이 살아서 메인경기장인 진천 스포츠타운에 입성하게 된다.
앞서 1부에서 언급했듯 예선 경기는 크게 기억에 남는 긴장감은 없었다. 그나마 예선 2경기에 젊은패기로 무장한 친구들과의 경기가 조금 더 쫄깃했던것 같았으나 우리를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인 수준, 예선은 조 1위로 득실 +10을 기록하고, 64강에 아마 제일먼저 선착했으리라
예선이 끝난시각은 11시 즈음, 보통은 1시쯤 본선 64강을 진행하니, 약 2시간의 시간이 남는 셈. 가장 이상적인 대회 진행이다. 조 2위로 본선에 올라가면 예선 경기가 그만큼 치열했다는 뜻이고, 본선 대기 쉬는 시간도 그닥 넉넉치 않아서 예선에서 힘 빼는 일은 절대 금물이다. 운이 좋았던게 최근에 출전했던 대부분의 대회 예선이 이렇게 수월했다는것. 예선은 항상 긴장되는 과정이지만, 이제 예선에서 탈락할것이란 생각은 거의 들지않는 단계에 와있다는것도 참 감사한 일이다.
약 96개 정도 팀이 참가했다고 들었다. 본선 1라운드는 64강이다. 조 2위와 붙을테니 어떤 팀과의 대결이 성사될지 궁금했는데,, 아,,, 예선때 같은 코트를 사용했던 다른조 베테랑 형님들이다. 인상도 만만치 않아서 평소의 내 멘탈이라면 어려운 싸움으로 이어갈게 뻔했는데, 동생의 발리로브와 기싸움, 라인시비의 우위 등을 토대로 경기는 일방적 양상으로 진행됐고, 긴장을 늦추지 않았기에 베이글로 마무리 할 수 있었다. 패배한 상대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한 치라도 틈을 보이면 언제든 전략과 전술을 변형해 위협할 수준의 팀임을 나와 파트너는 직감하고 있었기에 더욱 가열차게 몰아부칠 수 있었다. 이 라인시비에 대해 기록해 놓을 부분이 있다. 평소 나는 단식이든 복식을 치던간에 라인시비를 일절하지 않는다. 거의 손해를 보는 편이다. 내 라인 판정에는 관대한 편이고, 상대방의 라인판정에 대해서는 일절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게 내 스포츠맨십의 근본이자, 신념이다. 그렇지만, 이런 내 신념탓에 결정적인 스코어를 잃게된 경우가 왕왕 있었고, 패배하고 난 뒤 그 라인시비에 쉬이 져준게 패착이었던 적이 많았다고 후회한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파트너 동생은 달랐다. 라인시비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는 타입. 64강에서 베테랑 형님들은 우리의 라인판정에 대해 초반부터 예민하게 반응하셨다. 확실한 아웃이고, 빠른 타이밍에 콜을 했음에도 한참이나 늦은뒤에 라인을 찍어보라고 하는 등 아주 노련한 플레이어의 기질을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그때마다 동생은 이럴줄 알았다면서 라인을 짚어주었고, 단 한 차례도 라인시비에 지고가는 일이 없었다. 실로 대단한 멘탈이었다. 나는 경기중 스코어를 까먹고 지금이 몇대몇인지 헷갈리는 일이 비일비재한 수준인데, 동생은 그 라인시비를 걸고 들어올것 까지 대비해서, 한참이나 늦은 라인 확인 요청도 완벽하게 방어하는것이었다. 내 에티튜트와는 완전히 다른 부분이다. 그렇게 64강 아저씨들은 경기중에 도착한 짜장면을 눈물의 짜장면으로 드시면서 집으로 돌아가셨다. 베이글이란 스코어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듯,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눈물의 짜장면을 드시던 그 모습을 우연히 휴게실에 들어갔다가 목도하게 된 순간, "그ㅡ래, 그동안 나도 이렇게 어이없는 일격을 당하고, 한 동안 멍하니 코트장을 지키고 있던 수많은 세월이 있었지" 라며,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64강을 베이글로 이기고 나니, 또 한 시간 정도의 여유가 발생했다. 정보력에 엄청 나게 뛰어난 동생은 그 한 시간을 허투로 쓰지않았다. 오창 코트 이곳저곳을 누비며 다음상대를 파악학고, 다음 상대에 대한 정보를 휴민트를 이용해 이모저모 파악한 뒤 내게 왔다. "2번 코트 승자랑 저희랑 붙는데요. 휴민트에 의하면 여기 오창에 있는 어떤 팀들보다 탄탄하다고 들었어요. 최근 8강~입상을 계속하고 있다고 해요"
이미 1, 2, 3번 코트 경기를 보고 있던 나는, 오히려 2번 코트는 별로 볼게 없는데? 라고 답변하고 심드렁하게 다른 경기들을 살펴봤다.
잠시후 2번코트 경기가 종료되고, 점쳐두었던 젊은 친구들이 우리의 32강 상대로 결정되었다. 난타를 쳐보니 상대 에이스 선수는 아주 탄탄한 스트로커 였다. 물론 내가 원주에서 같이 운동하는 형님들의 수준에는 한 참 못미치지만 어쨌든 에러와 기복이 없는 스트로크를 구사한다는것은 위협이 될 만한 요소, 반면 듀스코트에서 웜업을 하는 친구는 이렇다할 특기할 만한 요소가 없어보였다. 토스를 했고, 상대가 서브를 택했다. 그런데 듀스코트에 있던 친구가 먼저 서브를 하는것.
뭐지? 쟤가 에이슨가?
보통은 에드코트에 서있는 플레이어가 첫 서브를 넣는게 상식인데, 더 약해보이던 친구가 서브를 먼저 넣는다는것 부터 내게 충격을 주었던것 같다. 그 친구는 플랫 계열의 서브를 넣었는데, 속도가 그닥 빠르지 않음에도 주로 바디쪽으로 깔끔하게 깔려오는 공이 결코 리턴하기 쉽지 않았던것 같다. 바운스가 낮게 형성되다보니 내가 자신있게 잡아치기도 어려웠고, 내가 공략한 리턴들이 그 서버에게 속절없는 앵글 발리로 마무리 되는 패턴으로 첫 경기를 내주었다. 동생은 내 리시브가 급격하게 밋밋해졌다며 진심어림 평가를 해주었고, 실로 나도 그 차이를 느끼고 있었고, 바로 첫 서브만에 답답함을 가지게 되었으니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평소 서브에 약점을 가지고 있던 동생 파트너도 이날을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여 서브안정성을 극대화 시켜놓은 상태, 우리는 각자의 서브를 어렵게 어렵게 따내며 극한으로 팽팽한 경기양상을 가져갔다. 4:4 쯤 되었나, 상대방의 결정적 에러 한 두개로 드디어 처음으로 경기를 리드하게 되었고, 5:4 노애드 매치포인트에서 천신만고 끝에 상대 범실을 유발, 우리는 이번 대회 첫 위기를 돌파할 수 있었다. 경기를 마친뒤 상대방에 대한 평가를 내려보자면, 정말로 침착하고 로우리스크 경기운영을 펼치는 팀이었다. 특히 포잡이의 경기운영이 아주 인상적이었는데, 절대로 강타를 치지 않는데 그 타이밍을 잡아치기가 상당히 어려웠고, 앵글발리를 아주 잘해서 내 스피드로도 앵글발리에 두 개나 당했던 기억, 반면 애드코트에 있던 친구는 게임 내내 정말 안정적인 기술구사를 보인반면, 이 팀의 단점은 리스크를 전혀 안지않고 경기를 하려한다는것. 단적인 예로 이들은 우리와의 경기중 단한번의 다운더 라인 리턴을 시도하지 않았다. 나는 끝까지 이들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을것이란 불안감에 더욱 위축되었었는데, 파트너는 "쟤네들 별거 없다. 지금 보여주는게 다다"라며 자신감을 한 없이 드러냈던 차이가 있던것 같다. 결과론이지만, 평소의 내 멘탈보다는 동생의 멘탈이 훨씬 경기 내용에 긍정적으로 작용했으리라 생각한다. 당연히 무언가를 숨기고 있을지 모른다는 걱정과 불안 상태로 경기하는 사람보다, 지금 보여주고 있는 저 테크닉 이상 발휘할 신인부 선수는 없다는 파트너 동생의 가정이 훨씬 신빙성이 높아보이는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간의 나는 이런 마인드로 대회에 임했던 것이다. 반면, 내가 상대를 거의 파악하고 있는 상태라면 나는 극한의 자신감과 높은 승률을 보인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나는 처음 만나는 상대를 항상 어려워했다. 단식모임에서도 처음 나온 회원들과의 경기를 나는 항상 어려워했다. 반면, 단식모임에서 평소에 나와 실력이 비슷한 친구들이 처음나온 회원을 쉽게 상대하는것을 보면, 내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의심했고, 혹은 처음 나온 회원에게 따박따박 볼을 드리는게 예의라고, 그래야 우리 단식모임에 안착할것이라고, 실제 시합 때 만나면 이기겠노라 자위했는지도 모른다.
작년 단식 4그룹에서 우승할 때를 생각해보면, 마인드셑이 참 편했는지도 모른다. 상대들은 불볕더위에 이미 대부분 그로기 상태였다. 물론 나도 덥고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상대방의 경기패턴이나 전술 구사가 뻔히 눈에 들어와 내가 대응했던 전략들이 모조리 들어 맞았던것. 그때를 생각해보면, 상황을 내게 유리하게 만들고, 상황에 맞는 전략 전술을 적절히 활용한것. 그때의 패턴과 진천 32강 전의 파트너 동생의 마인드셑이 유사했던것 같다. 승자의 마인드셑인것.
32강에서 탈락한 젊은 친구들도 빡빡한 경기를 했기에 홀가분하게 우리의 우승을 기원해주고, 자리를 떠났다. 그렇다. 이렇게 후회없는(그럴리는 없겠지만) 경기를 하고 난 뒤에 승자에게 우승을 빌어주는 이 순간은 얼마나 숭고한가
곧 쉼 없이 16강 경기가 배정되었다. 오창 코트에서 눈여겨 보지는 않았던 팀인데 웜업을 해보니, 애드코트 에이스는 정말 모든 플레이를 수월하게 하는 육각형 플레이어, 심지어 마인드도 굉장히 차분해 보였다. 반면, 듀스코트 바이스 선수는 강력한 포핸드를 주무기로 하는 베이스라이너로 보였다. 경기 시작전 파트너에게 바이스 선수에 대해 물으니, 구체적 묘사는 하지 않고, "무난해요"라는 표현으로 내 불안감을 더욱 자극했다. 웜업 이후 각자가 상대한 상대 선수에 대한 간략하고, 날카로운 분석을 자기 파트너에게 정확히 전달해주는 것도 별도의 감독이나 코치가 없는 일반 테니스 동호인의 중요자질이라 생각한다. 첫 서브는 상대 바이스가 먼저 넣었다. 큰 키에 직선적인 플랫스핀 계열 서브였고, 세컨서브는 약한 스핀 계열의 서브, 충분히 공략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상대방의 경기력은 정말이지 철옹성 같았다. 경기 시작전, 자신들이 시드를 이겼다고 호언한 부분도 나는 계속 신경이 쓰였다. 반면, 파트너 동생은 전혀 기죽지 않았다. 마치, 그래서 뭐 어쩌라고 라는 표정으로 가볍에 웃어넘겼고, 우리가 1:0으로 게임을 내주어도 미세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반면 나는 첫 게임을 주고 나니 불안감이 더 커져만 갔다. 저렇게 탄탄한 팀을 어떻게 이기나, 저렇게 강한 포핸드를 끊임없이 밀어넣는 선수를 과연 어떻게 이길것인가, 파트너 동생의 생각은 달랐다.
상대가 잘하는거 못하게 하면 되요
상대방 포잡이의 경우,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다. 웜업내내 백핸드 스트로크를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다과 한다. 그럼 십중팔구, 원백이거나, 백핸드를 슬라이스로만 구사하는 타입. 일단 노출된 약점은 그것 하나, 우리 서브는 바이스의 백핸드만 공략하여 서브를 구사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강한 포핸드 스트로크를 주무기로하는 바이스 선수는 포핸드로 치기 불편한 상황이 연속되자, 장점이었던 포핸드에서 에러가 나기 시작했다. 우린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내 파트너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흔들리는 상대 바이스에게 발리 로브로 밀어 붙인것. 솔직히 나는 그 장신의 선수한테 저런 로브볼이 통하겠는가 싶었는데, 왠걸, 장신선수는 생각보다 높은볼 스매시와 높은볼 발리처리가 미숙했다. 결정적인 순간은 라인시비에서 발생했다. 2:1로 리드하고 있던 나의 서브턴, 서브에 자신이 없던 나는 상대 리턴에 속절없이 뒤로 밀려났고, 상대의 발리가 내 파트너쪽 사이드라인으로 향했는데, 정확히 들어왔는지 아웃인지 쉬이 구별할 수 는 없지만, 파트너 동생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아웃'콜을 시전, 상대 바이스는 절대 아웃이 아니라고, 길길이 뛰는 상황. 난 대각선 반대쪽에 있었기 때문에 정확히 본 것은 아니라서, 내가 확인한 볼의 위치를 추적해보니, 손가락 하나 굵기만큼 빠져있는것을 확인했다. 공 자국을 표시하고, 상대방에 동의를 구하니, 내가 찍은 쪽이 결단코 아니라고 우기는 상황. 결국, 상황은 렛으로 종료되었고, 천신만고 끝 그 게임을 우리가 가져올 수 있었다. 3:1, 다시 상대 바이스의 서브, 공방중에 상대가 친 공이 낮지만 길게 형성되어 내가 자연스럽에 뒤쪽으로 점프하며 공을 피했는데, 상대는 그 공도 코트에 들어왔다며 우기는 상황, 나와 내 파트너는 어의없다는듯, 나가는 공을 보면서 피했는데 어떻게 우리가 잘못 볼 수 있겠냐며 합심하여 싸웠다. 상대 바이스는 렛으로 상황을 몰고가려했으나, 상대 육각형 에이스 선수가 아웃을 인정해버렸다. 그때의 멘트가 아직도 기억난다.
알았으니깐, 공이나 빨리주세요.
솔직히 이렇게 쉽게 포기 할 줄은 몰랐다. 보통은 잠깐의 대치를 이어가다가 렛으로 종결되기 일 수 인데, 우리콜이 인정된다니, 티끌모아 태산이다.
어느새 스코어는 5:2, 또다시 내 서브권이 어려웠지만, 상대는 이미 전의를 상실한 상태 6:3으로 시드를 잡았던 강력한 포핸드 + 육각형 선수 팀을 잡고, 메인코트인 진천 스포츠센터로 이동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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