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저널/삶의 단상

가정, 일, 사람 그리고 불편한 관계

인세인피지 2015. 11. 1.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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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치열했던 임용시험의 경쟁률을 뚫고, 체육교사로 첫 발을 내딛기 전 신규교사라면 누구라도 피할 수 없는 과정이 있는데 그건 바로 신규교사 직무연수였으니 당시를 회상해 보면 합격의 기쁨도 잠시 사도의 헌장이 무색하리만치 교사로서의 사명감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 (나를 포함한)대부분의 신규교사들이 자신만의 교육철학을 공고히 하지 않은채 단지 교사라는 직업적 매력이나 사범대학교를 졸업했다는(이라 쓰고 2급 정교사 자격증을 갖고있다고 읽자) 최종관문으로 교사직을 추구하지 않나 싶다. 나는 그중에서도 특히 그러한 성향이 강했는데 체육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대학에 입학해서 가졌고, 체육교육과를 나오면 교사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갖는다는 것도 입학후에 알았던것 같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진로교육이나 진학지도가 결코 국가주도적 체계적 진행이 아니라, 자기주도적으로 정보를 입수하고 주요한 누군가의 멘토링을 받아야만 하는 실정이라는점.

도대체 무슨 얘길하고 싶기에 스스로 교육철학이 없었다는 얘기를 구구절절히 하고 있느냐면, 이제 교직에 들어선지 만5년이 지나가는 지금에서야 교육적철학이 확립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굉장히 복잡하고, 불편한 얘기들을 꺼내놓아야 하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은게 그런류가 되고 싶지 않아서 인가보다.

특별한 사명감도 없이 특정 업무를 수행한다는 것. 그것은 불행한 일이다. 교직에 대한 특정한 목적의식이 없었다는 것, 어쩌면 대부분의 신규교사가 비슷한 상태로 현장에 발령을 받고 있는지 모르겠다. 다만, 소위 말하는 그 교육철학의 부재 상태가 길어지면 안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는 그 교육철학의 확립이 그릇된 방식으로 진행되어서도 안된다는 말이다.

언젠가 페이스북에 '나는 진보수다'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던것 같다. 불현듯 스켜지나간과거의 기억이 너무나도 창피해서 당장에 그 글을 내리려 검색해 보았는데, 도통 찾을 수가 없다. 진정한 아티스트들은 자신의 작품을 세간에 공개하기 까지 각혈의 고통을 통해 거르고 걸러, 신중이 또 신중을 기해 비로소 작품을 출품 한다던데 난 아티스트가 아니니까라는 자위로 '나는 진보수다'라는 글을 영영 잃어버려도 될까(여기서 진보수는, 특정정치성향을 특하는데, 진짜보수 라는 뜻이아니라 - 진보와 보수의 중간적 입장에서 상황에 따라 보수일수도 진보일수도 있다는 - 다소 박쥐같은 컨셉,,,, 역시나 지금도 작품이라기 보다, 배설에 가까운 나의 괴짜논리에 의한 당혹스러운 해석이다.

공공연히 얘기한다. 공부를 더 하고 싶다고, 공공연히 얘기했다. 법에 대해 알아야 겠다고, 도서벽지에 들어가 10여년을 근무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그렇지만 호기있게 뱉어낸 내말을 감히 내 스스로 책임질 수 있겠는지 그 또한 자신이 없다. 교육철학이 스스로 확립되었다고? 개똥철학이다. 큰 의미에서의 나름의 교육적 관념이 형성되고 있음은 느끼지만, 이것이 곧 우리 아군외 적군들이 얘기하는 공무원의 매너리즘이요 철밥토리즘 으로 왜곡 될 수 있기에 이쯤에서 접어두자.

그래도, 이따금 이렇게 스스로를 정비하고 있지않는가. 하고싶은것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하고싶은대로만 하고 살 수 없다. 나는 처해진 환경으로 제약을 두둔하곤 했는데 결국엔 그건 비겁한 변명이요 스스로 자신이 없는 것일 뿐이다. 근데, 난 32살 밖에 안됐어. 너무 젊잖아 - 젊다는것, 아직도 해야할 일이 너무도 많다는것. 끊임없이 사고하고, 끊임없이 행동하라. 30대에 접어든 나의 인생모토가 바뀌고 있다(끊임없이 사고하자는 생각은 20대에도 가지고 있었는데, 사실 인세인 - 안정감 으로 삶의 태그가 변화하고 있음을 스스로도 느끼고 있다. 근데 만족스럽다는게 더 30대 스럽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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