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저널

병원에서 겪고 느낀 것들 1

인세인피지 2018. 10. 23. 15:57
반응형

부상을 당한게 9월 28일, 무릎 수술을 위해 입원한게 10월 16일, 수술을 마치고 온전히 회복과 재활에만 집중하고 있는 요즘 느끼는 것들, 느낀 것들 몇가지를 두서없이 정리하고자 한다. 별의별 얘기가 다있음주의


아, 참고로 사진위주와 간단한 코멘트 위주 임


입원수속(18.10.16, 강릉 아산병원 3층 로비)


부상 후 10여일간 집에서 요양을 했습니다. 수업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기에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병가를 내고 쉴 수 밖에 없었지요. 수술 날짜를 부상 발생 후 왜 보름이나 뒤에 잡았냐 며 물으시는 지인들이 있는데, 의사쌤이 말하길, 잔 부상은 그 기간동안 눌러붙이고, 붓기가 빠진뒤 수술하는게 적정하다고 합니다. 실제로 전방십자인대 수술은 부상 후 6개월 뒤에 하는 경우도 있고, 완전 파열 뒤에도 평생을 그냥 살아가는 분들도 있다고 합니다. 대신 시술 받지 않는 경우 '유격'이라는 후유장애가 발생하는데 쉽게 말하면 아랫다리,, 전문용어로 하지가 덜렁거리는 느낌이 든다고 합니다. 물론 저도 요양기간 다리를 디딜 때 이따금 그런 느낌을 받은것 같습니다. 네 전방십자인대가 끊어졌습니다.

어찌됐든 운동을 업으로 먹고사는 저는 수술해야겠죠.



대학 병원이 이렇게 장사가 잘되는줄 몰랐습니다.



고 정주영 회장의 지시로 1996년 설립된 강릉 아산병원은 이곳 영동지역 응급외상센터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이쪽지방에선 크게 다치면 죄다 여기로 모여들지요. 얼마전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 전라도 지역 응급외상센터의 천태만상을 고발한 횟차를 시청한 터라 이거이거 여기도 그런것 아니야? 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영동지방에서 제일 큰 병원은 여기하나 입니다. 그래도 입원전부터 얼마나 병원에서 연락이 자주오는지 입원 몇일전 부터 10/16일이 입원일이라고 친절히 문자도, 전화도 옵니다.

안그래도 요즘 다른문제로 골이 좀 아픈데 갑자기 부상에 수술이라니요, 거참,, 한 여름밤의 꿈을 꾸며 열공하고 있던게 엊그젠데 어쩌다 병원신세를 지게된 내 신세라니요. 한탄하면 뭐합니까, 다 내 실순걸요.

2018/10/21 - [일상저널] - 한 여름 밤의 꿈 : 그간의 일들(18.8.-10.21)

그렇게 안내받은대로 오후2시에 입원수속을 밟으러 왔습니다만, 빈 병실이 없다하여 하염없이 기다리길 오후5시, 드디어 입원에 성공합니다. 입원하기가 이렇게 어려운줄 처음알았네요. 참고로 저는 여러부위의 부상과 수술경험이 있는데 부위를 나열하기는 좀 그렇고 작고큰수술을 5차례 정도 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이 정도면 나이에 비해 결코 적지 않은 수술 입원 기록입니다. 

그리고, 6인실과 4인실, 2인실을 보통의 서민들은 이용한다고 칠 때 수용인원에 따른 가격차이가 많이 나는줄 알았는데 우리네 보건시스템의 혜택으로 큰 차이가 없다는 것과 생각보다 입원료가 얼마 안나온다는 사실도 알게되었습니다. 당연히 돈만내면 2인실이든, 4인실이든, 6인실이든 선택할 수 있을줄 알았는데 그건 경기도 오산이었습니다. 병원에서 자리가 나는 순으로 무차별 랜던 배정이랍니다. 물론 동네 의원의 경우는 선택할 수 있겠지요. 또한 1인실이나 특실의 경우에는 애초에 단가가 다르기 때문에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서민이니깐요.

그래서 입원한 병실은 정형외과 병실이 아닌 이비인후과병실이었습니다. 외과 환자가 엄청 많다고 합니다. 천고마비의 계절, 다들 왕성한 활동들을 하시다가들 이리로 오셨나봅니다.


바코드에 적힌 숫자들이 뭘 의미하는줄은 모르겠으나 뭔가 개인정보 같아 모자이크 처리합니다. 만으로 33세 남자입니다.


이 바코드가 기능이 있습니다. 바로 엘리베이트 실에서 병실로 들어가는 중간문에 갖다대면 열리는 인식표 더라구요. 그렇다고 이게 없으면 아무도 못들어오냐? 그건 또 아닙니다. 아파트 현관출입문처럼 남이 열고 들어갈 때 같이 들어가면 됩니다. 그냥그렇습니다.


혐오 사진이라 올릴까 말까 했는데, 아직 수술전이니뭐, 그렇습니다. 왁싱당했습니다.


뭐 요즘은 패션으로도 왁싱을 하니, 이해바랍니다. 다만 몸에 특히 하체에 털이 많은지라 수술전날 제모를 하라는 주문을 받습니다. 수술 부위만 하면 된다고 하여 열심히 왁싱을 하긴 했는데, 하다보니, 이참에 양쪽다리 전체를 할껄하는 후회를 포스팅하는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이게뭐얔ㅋㅋㅋ


그러고 보니 애초에 이런것들을 포스팅할 작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8년차 블로거 이기도 합니다.


수술이 끝났습니다. 잔인하게도 수술후 3일째 되는 날부터 굽히기 재활에 들어갑니다.


왠 기계를 가져옵니다. 집어 넣으랍니다. 그리고 기계를 작동시키려 합니다. 수술전 보름동안 거의 90도 밖에 굽혀지지 않았던 다리였는데 더 굽히려 하면 통증이 있었던것을 몸과 머리가 기억합니다. 정말 수술실 들어갈 때보다 더 떨렸습니다. 아직 무릎 속 통증도 그대로인데 이 기계로 강제로 꺾다니요. 이건 고문입니다.



겁은 또 많아서 엄청 쫄았는데 다행히 한계 각도를 제게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주더군요. 정말 하나님께 감사하고 감사했습니다.


패널창에 FLX가 플랙스=유연성, 뭐 각도 이런걸 뜻하는 것 같습니다. 첫날은 최대한 소심하게 플랙스 50으로 꺾어 줬습니다. 너무 소심했나요. 근데 방심은 금물 처음에는 50도 한계치에 다다를 때도 적잖은 고통이 있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기계를 여러 환자들이 돌려서 사용하는데 방금 전에 설정 되어있던 값은 140이었습니다. 만약 지금 상태로 140을 시행하면 아마도 저는 혼절할 것 같습니다. 아마 정말 혼절 할 지 모릅니다. 한번에 한 시간, 매일 오후 시간은 랜덤으로 이 기계가 제 앞으로 배달됩니다. 우리 여자 간호사들 정말 대단합니다. 이 기계가 제가 살짝 들어보니 약 20kg쯤 되는 것 같은데 이 기곌 번쩍번쩍 들어옴깁니다. 여자일때와 간호사라는 전문직업인 일 때는 분명히 다른가봅니다.(여성은 연약해야한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워낙 이 분들이 가늘고 그만한 힘이 없어보여서 그랬습니다)

암튼 그래서 요즘은 플랙스 115까지 하고 있습니다. 115까지 하면 고통에 엉덩이가 들썩들썩 식은탐이 줄줄 흐릅니다. 옆병동 할머니도 한다는 140까진 언제하나요.


그러다 보니 퇴원하고 밖에 나가서도 왠지 이 기계를 이용해서 재활하고 싶은 충동이 생겼습니다. 하루만 안하면 다리가 금방 굳어버리거든요. 그렇다고 내 힘으로 다리를 꺾을 순 없습니다. 그 얼마나 비장합니까. 내손으로 내 무릎을 꺾어야한다니. 그래서 가격을 알아봤더니

기계값이 삼백만원이네요. 렌탈도 있네요. 보름 렌탈은 15.9만 입니다. 고민하게 됩니다. 보험처리도 안될테니, 가까운 재활의학과 가서 하는게 낫긴 하겠지만 워낙 시골에 살고, 차량 운전도 할 수 없다보니, 여러사람 불편하게하고 요즘 비싼 기름값 쓰느니,,, 렌탈하는게 날지도 모르겠지만, 일단보류


 어느덧 주말이 왔습니다. 하반신 마취를 했던 척추에 무통주사를 꼽고, 끼니 때마다 진통제를 복용하지만 여전히 무릎 안쪽 통증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수술할 때 언뜻보니 드릴과 해머, 등등으로 인체개조를 하고 있더라구요. 그때 알았죠. 아,,, 마취 깨면 아프겠다.


혐오방지를 위해 수술 부위는 찍지않겠습니다. 감염예방을 위해 거즈로 덮어 두었습니다.

거즈로 덮은 부분들은 관절경(내시경 같은 건가봅니다) 삽입을 위해 뚫었다고 하네요. 한 5군데 쯤 뚤린것 같습니다. 전방십자인대 재건수술과 우측 반월상 연골 재생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주말이 왔습니다. 정확하게는 일요일이 왔지요. 가족과 함께 병원 내 교회에서 실시하는 종교행사(주일 예배)에 참여합니다. 큰 아들이 한창 뛰어다니고 까부러칠 때라 예배에 집중이 안됩니다. 그래도 일요일은 온전하게 지켰다는 마음에 한결 편안해집니다.

예배 후에 맛있는 떡도 받아옵니다. 참 고마운 분들입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사진입니다. 예배당으로 쓰였던 별관 지하1층 대강당 옆에 걸려있습니다.


그냥, 이분은 이분대로 정말이지 우리 현대사에 빠질수 없는 분이죠. 그래서 기업이름도 현대(뭐얔ㅋ)




현재 묵고 있는 병실은 5층입니다. 병실에서 보면 창밖에 이렇게 멋진 정원이 있습니다. 입원기간 환자와 보호자 모두 이곳에서 쉼을 얻습니다.(뭔가 점점 홀리해지고 있다)



아들이가 놀러왔습니다. 부쩍 무럭이가 되고 있습니다. 무럭무럭자라거라


손이 많이 가는 4살 남아와 이제 막 5개월여가 지난 둘째 아이까지, 거기에 남편 마져 몸져누웠으니, 이거 면목이 없다는 표현은 지금 써야할것 같습니다.



말썽꾸러기 큰아들은 병원에 자주 오지 못합니다. 말썽부리니깐요. 어째 축구하는 폼이 제법 기능이 있어보입니다. 근데 왜 맑은 날 장화를 신고 축구를 하는 걸까요.


엇? 가르쳐준적도 없는데 폼이 제대로 나옵니다. 물론 임팩트는 어떻게 하는지 못봤지만요. 저 왼손동작이 아주 맘에 듭니다. 뭔가 배운애 같아요.



입원 전날 아침, 집에서 부스스 잠깬 상태로 둘째를 안고 있는데, 첫째 아이 어린이집 등원 전에 포즈를 지어보랍니다. 얼굴에 너무 황달끼가 있어서 올릴까 말까하다가, 첫째 주완이 표정이 너무 예뻐서 올릴 수 밖에 없습니다. 뭔가 좀 짠하네요. 가족애는 역시 단짠단짠 인가요(두서 없이 쓰다보니 헛소리가 다 나옵니다)


개구쟁이 주완이와 순둥이 희본이, 애엄마가 고생이 많습니다.




입원직전 주말에 양양에 들릴 일이 있어 들렸습니다. 여기가 한국이여, 캘리포니아여


커피도 한잔 뽑아좝숩고



다른일로 속초에 들른김에 다친발을 쩔뚝거리며 같은 클럽 형님들 대회참가를 응원합니다.


초상권 보호를 위해 모자이크 처리


사실 이 포스팅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고 싶은 얘기는 이 밑에 잡다구리들인데요. 아무래도 통증이 가라앉고 시간이 나다 보니, 간만에 인터넷 검색질을 합니다. 그간에 했던 검색질과 잡다구리들을 나열합니다. 그리고 나름의 코멘터리도 곁들여 봅니다.


빈티지 클래식 바이크를 좋아합니다. 어쩌다보니 좋아하게 됐지요. 이따금 다음 카페에 들어가 멋진 바이크가 매물로 나오지 않았나 눈팅하는 것도 클래식 바이크 매니아들에게는 하나의 즐거움인데요.

뙇!!! 멋집니다. 짜세보세요. 포지션 보세요. 


와,, 이겁니다. 더 놀라운건 이 모델은 우리나라에서 90~00년대를 살았다면 누구나 아는 모델 국산 VF125cc를 트래커(가벼운 임도용?) 스타일로 커스텀 한 모델입니다. 워낙 유명한 바이크라 멋지다고 생각은 했었는데 매물로 나왔네요. 예전이라면 가슴이 ㄷㄱㄷㄱ 했을텐데, 지금 상황에서 심장이 막 나데고 그랬다가는 와이프한테 등짝 스매싱이나, 무릎을 꺾일 수 있겠죠. 아플겁니다. 두배로, 아니 몇배로 아프겠죠  

그져 군침만, 포지션 여기저기가, 심지어 녹이들어선 저 탱크도, 심지어 저 바닥도 멋집니다.

캬 자세죽이죠. 그래도 지금 200cc를 타고 있으니, 다운그레이드는 아닌것 같습니다. 속도에 대한 갈증이 있거든요.

그렇다고 당장에 업글을 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내년에 이곳 강릉 옥계, 오토바이 동호인 입장으로 정확히 말하면 '7번국도를 끼고 사는 김교사'가 내년엔 어디로 발령을 날지 모르기 때문에 뭔가 기변을 생각하는건 아무래도 무립니다.


다음으로 넘어 갑니다.


당췌 이게 뭘까요


'한글영어'라는 공부법 들어본적 있나요? 그렇습니다. 저는 9개월간 대학원 입학을 위해 텝스 공부를 했는데요. 결국은 실패 했습니다. 298점이 필요했는데 약 10여점이 모자랐지요. 그래서 내년에 더 공부를 해서 한번 더 도전해보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오랜만에 영어 공부를 하면서 느낀건데 정말로 저는 영어 듣기를 못하더라구요. 그리고, 이렇게저렇게어떻게 텝스 기준점수를 충족한다한들 남는것은 그져 텝스 점수 몇점,,, 그뿐일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대학원도 텝스도, 내가 생각하는 궁극적 목표를 위한 하나의 과정에 지나지 않거든요. 실제로 저는 영어를 편하게 듣고 싶고, 읽고 싶습니다. 말 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구요. 그런데 기존의 텝스 공부 방법으로는 공인성적 외에는 그닥 머릿속에 남지 않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당장 시험공부를 하던 올 여름은 이것저것 잴것도 없이 일단 이 시험에 합격하고 생각해볼일이다 라고 덮어두었었죠.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다시금 약 1년이라는 시간이 생긴 마당에 같은 고민을 거듭하며 같은 방식으로 공부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제게 테니스가 꼭 그런 존재였습니다. 어려서부터 조금씩은 쳐왔지만, 성인이 되어 좀 더 잘하고 싶었고, 학생들에게 가르쳐줄만한 좀 더 높은 수준의 그것을 보유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모든걸 다시 시작했고, 모든 것을 바꿨습니다. 테니스 동호인들은 알겁니다. 기존에 10년 넘게 테니스를 쳤던 사람이 그립부터, 모든 걸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는것이 얼마나 어려운 문제인가를요. 심지어 작년 겨울까지만 해도 아무리 따라하려고 해도 안되는 조코비치의 포핸드가, 결국 특정 재능과 신체구조를 타고난 사람만 할 수 있는 기술인가라는 근본적인 고민과 함께 약3년여를 추구한 포핸드 스트로크 연습을 포기할까도 싶었습니다. 3년이란 시간동안 결코 게으르지 않았습니다. 부단히 노력했고, 부단히 연구했습니다. 운동에 재능도 있다고 스스로 자부했습니다. 그런데 결코 조코비치와 같은 포핸드 폼으로 원하는 정도의 스트록이 구사되지않았습니다. 답답했고, 힘들었습니다. 포기하고 싶었지요. 실제로 이노무거 포기해버릴까 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은 그 해답을 찾았습니다. 주변에 나와 같은 폼으로 스트록을 구사하는 동호인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코치도 가르쳐주지 않은, 아니 가르쳐 줄 수 없는 매카니즘의 포핸드를 깨닫고, 시행할 수 있게 된것이지요. 진짜냐구요? 기록이 말해줍니다. 그져 그런 수준의 동호인, 아니 조금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발이 빠르고 운동센스가 있는 만년 유망주 였던 저는 제대로 장착한 포핸드 하나만으로 올해 무려 3번의 우승타이틀을 거머쥡니다. 물론 복식 경기였기  때문에 파트너를 잘만나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확실한건, 포핸드를 완성하기 이전에는 대회 입상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었다는 것이죠. 또한 제가 아직 포핸드 말고는 만족하는 기술이 없기 때문인지라, 분명히 제 포핸드 때문에 3번의 타이틀에 근접할 수 있었다고 자부합니다.

쓰다보니, 한이 서릴뻔 한 그간의 테니스 서러움이 복받쳐올라, 주저리 길게 쓰게 됐는데요.

어찌됐던, 그리하여 새로운 영어교육의 패러다임, '한글영어'를 시도해 보기로 했습니다.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고, 입원하면 봐야지하고 사뒀지요.


책의 구성은 일반적 영어교육의 패러다임을 조목조목 부정하고, 새로운(모국어 배우듯 익히는 방법이 한글영어니, 사실 새롭게 창안 한 방법은 아니지요) 영어교육방법인 '한글영어'의 원리를 반복, 반복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의 저술 방식 또한 상당히 의미있게 다가왔는데 언젠가 테니스 관련 서적을 저술하고 싶은 작은 희망을 가지고 있는 내게 기존 통념을 통렬통쾌하게 엎는 저술 방식, 딱 내 스퇄이야


그리고, 이 책을 읽어보니, 성인을 위한 한글영어 방식과 아직 한글문자를 모르는 유아를 위한 한글영어 방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선 나를 위한 한글영어는 e북으로 구매했다.

어디서나 볼 수 있게 e북으로 구입함


뭐 이런식입니다. 영어문자는 안보고, 안읽고 한글로 읽고, 영어로는 듣기만 한다. 

새롭고, 아주 확신있는 정용재 저자의 주장에 완전 홀딱넘어감(시간이 얼마간 걸리든 해내고 만다)


그리고 아이를 위한 교재 구입을 위해 해당 카페에 방문했다.

컥, 꽤나 원시적 방법으로 판매하고 있다.


소정의 금액을 이체하니, 이메일을 통해 관련 서적과 동영상, 음원들이 압축된 채로 전송된다. 일일히 칼라출력해야하기에 집에 돌아가서 해야겠다. 사실, 아이와 함께 영어공부를 하겠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적 없는데, 입원 전 약 2주간 집에 있어보니 아이랑 놀아줄 수 있는 소재에 한계를 느꼈다. 엄마는 컨텐츠 위주로 놀아주는 반면, 아빠와는 기차놀이, 장난감 놀이, 키즈카페 등 활동위주의 놀이만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뭔가 교육적 컨텐츠를 아이와 같이 할 수 없을까 란 생각을 언뜻해봤는데, 기껏해봐야 집에 있는 곰곰이 책 읽어주기 정도가 내 역량의 한계였음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매일 키즈카페에 데려갈 수 도 없는 노릇이고,

그러다가 한글영어 관련 서적과 정보를 접해보니, 이미 많은 엄마들이 엄마표 영어를 표방하며 한글영어를 통해 아이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됐다. 바로 이거다 싶었다. 내가 직장에 나가면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것은 오롯이 엄마의 몫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아이가 공부하는 것을 나도 해야한다. 같은 진도를 나갈 수 있으니, 아이의 진도를 언제든 체크해 줄 수 있고 틈날때 마다 이것을 봐주고, 같이 이야기 하고 싶어서라도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날 것 같다. 사실, 재활이 다 끝날때 까지는 꼼짝없이 아이와 한글영어 놀이나 해야겠다.

이제 다썼나? 아니다,아직 다 못 썼다. 근데, 포스팅이 너무 길어진다. 연재로 가야겠다. 그리고 내일이 퇴원일줄알았는데 아닌것 같다.

글을 쓰다보니 막판 어느시점 부터, 다나까로 말이 짧아졌는데, 그건 순전히 한화이글스가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막판 수세에 몰렸기 때문입니다. 글쓰던 흐름이 한번 끊겨버려서 '니다'체에서 '다나까'체로 바껴버렸습니다. 그렇습니다. 한화는 졌습니다. 그래도 우린 행복했습니다.


기적을 이뤄냈습니다.

그건 그렇고 우리선수들 청계산에 집합하진 말아야할텐데

 

투 비 컨티뉴

반응형